광안리 해수욕장의 낭만 살아 숨쉬는 여름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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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광안리 해수욕장의 낭만 살아 숨쉬는 여름밤

by segero88 2025. 7. 28.

광안리 해수욕장

뜨겁고 시원하고 웃겼던 그날, 바다엔 에어컨이 없었다

 

"올여름은 에어컨이 아니라 바다가 책임진다!"
그렇게 외치며 나는 부산행 KTX를 탔다. 


목적지는 광안리 해수욕장. 해운대는 너무 북적이고,
송정은 조금 조용하다면, 그 중간 어딘가에서


바다도 즐기고 사람 구경도 하고 맥주도 마시고 싶은 나에게
딱 맞는 바다였으니까.


오전 11시 42분, 바다는 아직 조용했다

기차에서 내려 지하철을 갈아타고
광안리역 3번 출구로 나왔을 때, 시계는 11시 42분.


햇볕은 정수리를 찌르는데 바다는 고요했다.
첫 느낌은 이랬다.


"어라? 사람이 별로 없네? 실화야?"
그도 그럴 게, 7월 평일 오전 방문객은 평균 4,800명 선.
주말엔 9,000명까지 늘지만, 오전 시간은 그야말로 여유 만렙이다.


나는 신이 나서 파라솔 7,000원짜리 하나 빌리고,
돗자리를 깔고 누웠다.


처음 들은 파도 소리가, 그날 들은 것 중 제일 시원했다.


서핑? 그런 건 해본 적 없지만 구경은 잘함

광안리에는 서핑 강습소 9곳, 그리고 매일 평균
서핑 체험객 1,100명 이상이 바다를 가르며 탄다.


나는?
물론 안 탔다. 겁도 많고, 중심도 못 잡고,
무엇보다 수영복 안 가져왔다.
그래서 그냥 파라솔 밑에서 콜라 마시며 구경했다.


그런데 진짜 멋있었다.
어떤 사람은 두 번 연속 넘어지면서도 웃고 있었고,
어떤 커플은 보드를 같이 타다 파도에 쓸려
“이건 이별이냐!”라고 소리치며 웃었다.


이 해변은 진심으로 웃는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점심은 피서다, 민락수변 야시장으로 튀었다

광안리 바로 옆에는 민락수변공원이 있다.
걸어서 10분도 안 걸리는 거리.


거기엔 푸드트럭 30여 대가 늘어서 있었고,
내가 선택한 건 ‘전복치즈버터구이+수박에이드 세트’.


가격은 총 13,000원이었는데,
맛은 2만원짜리 같았다.


햇살은 뜨거웠지만,
수박에이드는 컵 하나로 여름을 다 이겨내는 느낌이었다.
그늘 아래 앉아 파도와 전복을 동시에 맛보는 이 기분.


내 인생에 몇 없는 완벽한 점심이었다.


오후 3시, 우연히 길거리 댄스에 합류함

식사 후 바다로 다시 돌아오던 길.
해변 무대에서 버스킹 팀이 춤을 추고 있었고,
관객들이 둥글게 서서 구경 중이었다.


그런데 한 댄서가 내 손을 잡아끌었다.
“같이 춰요!”
"아뇨, 저는 관객이에요..."
말도 끝나기 전에 나는 치킨댄스를 추고 있었다.


그 장면이 어땠냐고?
부끄럽지만, 덕분에 광안리 공식 SNS에 15초간 등장했다.
(조회수는 아직 미미함)


해질 무렵, 광안대교가 금으로 녹아내렸다

오후 7시 25분,
하늘이 주황에서 보랏빛으로 변해갈 무렵.


광안대교 위로 노을이 퍼지고,
그 빛이 바다를 금색으로 칠했다.


그 광경은 말 그대로 카메라에 담기엔 부족하고,
눈과 마음에만 담아야 할 순간
이었다.


근처에 앉아있던 외국인 커플은 감탄사를 연발했고,
어린아이 하나는 “엄마, 바다가 빛나!”라고 외쳤다.


그때 나는 확신했다.
광안리의 진짜 매력은 해 질 무렵부터 시작된다는 걸.


밤 9시, 해변 위 테이블에서 생맥주와 해물라면

조명이 하나둘 들어오고,
사람들이 모래 위 테이블에 앉기 시작했다.


나는 바다 바로 앞 노천 펍에 앉아
생맥주 4,000원, 해물라면 6,000원짜리 조합을 주문했다.


라면에서 김이 피어오르고, 파도 소리는 조용히 덮여 왔다.
누군가는 기타를 치고, 누군가는 조용히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도시는 자고, 바다는 깨어있는 밤.
그 밤에 나도 함께 앉아 있었다.


 

결론: 여름엔 잠깐, 광안리에 살아야 한다

 

 

누군가는 광안리를 '덜 유명한 해변'이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해운대처럼 유명하진 않다.


하지만 여긴 혼자 와도, 둘이 와도, 다섯이 와도 편한 바다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올여름이 너무 더울 것 같다면,
광안리에서 한 3일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그 바다는 이미 나를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