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에 홀려 떠난 쌍곡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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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소리에 홀려 떠난 쌍곡계곡

by segero88 2025. 6. 30.

쌍곡계곡

이건 눈보다 귀가 더 즐거운 여행이었다

모든 건 한 편의 유튜브 영상 때문이었다.


ASMR 마니아인 나는 어느 날,
‘계곡 물소리 1시간 집중 영상’을 틀어놓고 일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자꾸만 눈이 감기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소리, 그냥 진짜 들으러 가면 안 되나?”

 

그리고 그다음 주, 나는 짐을 쌌다.
진짜 물소리를 듣기 위해.


🎒 장비는 간단했다

나는 아무리 떠들어도 조용한 성격이다.
그래서 이번 여행의 짐 리스트도 매우 소박했다.

  • 방수 노트 (소리 메모용)
  • 무선 이어폰 (하지만 결국 쓸 일 없음)
  • Decibel 측정 앱 (소리 수치 덕후니까)
  • 그리고 아쿠아슈즈 (계곡엔 매너템)

무겁지 않아서 좋았다.
이번 여행은 뭔가 걷기보다, 듣는 데 집중하고 싶었다.


🗺️ 충북 괴산? 여긴 무슨 소리의 천국이야?

쌍곡계곡은 서울에서 차로 약 2시간 반,
생각보다 금방 도착한다.

처음 도착하자마자 든 생각:

“어? 이건 영상보다 낫다.”

소리가 다르다.
이어폰이 줄 수 없는 공간감,
왼쪽 바위에서 물이 흐르고, 오른쪽 숲에서 새가 운다.


심지어 내 발바닥에서 물이 찰박찰박 거린다.
이건 귀뿐 아니라 몸 전체로 듣는 소리였다.


🎧 계곡 따라 펼쳐진 ‘소리 트랙’

나는 500m마다 멈춰서 ‘청취 모드’에 들어갔다.
처음엔 단순한 재미였는데,
어느새 완전 몰입.

 

🎶 0.5km – ‘졸졸송’
물살은 얕고, 자갈 위를 조심조심 흐른다.
딱 집중할 때 틀어야 하는 ASMR 소리.
43dB, 아주 조용하지만 기분은 가장 맑았다.

 

🎶 1.5km – ‘팝팝팝 리듬’
바위틈에서 물이 퐁퐁 튄다.
신기하게도 박자가 살아 있다.
이쯤 되니 나는 작곡가라도 된 듯 음을 적고 있었다.

 

🎶 2km – ‘폭포 드럼 비트’
하이라이트다.
물소리가 퍼커션처럼 쾅쾅 터진다.
심지어 내 심장 박동까지 맞춰진 느낌.
72dB? 숫자도 드라마틱하다.

 

🎶 2.5km – ‘울림이 있는 중저음’
좁은 협곡, 소리가 되돌아온다.
“내가 걷는 발자국도 음악이네…”
철학자 모드 on.

 

🎶 3km – ‘무소음 명상’
끝자락에선 거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여긴 오히려 침묵이 음악이었다.


🤯 에피소드 하나 – 말없이 통하는 여행자

협곡에서 혼자 멍하니 앉아 소리를 듣고 있는데,
어디선가 중년 남성 한 분이 조용히 옆에 앉았다.

 

한참 동안 둘 다 말없이 앉아 있었는데,
갑자기 그분이 한마디 했다.

“이게 음악이죠.”

 

나는 미소만 지었다.
우리는 말이 필요 없었다.


그 공간엔 소리와 공감만 있었으니까.


📸 귀뿐 아니라 눈도 즐겁다

쌍곡계곡은 ‘소리’가 주인공이지만,
풍경은 서브 주연급이다.

  • 목재 다리 위에서 내려다본 물살
  • 큰 바위 위에 앉아 귀 담그는 시간
  • 협곡 틈 사이로 비치는 햇살

사진도 많이 찍었지만,
어쩐지 이번 여행은
‘녹음 버튼’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여행 팁 (소리 덕후용)

  • 앱은 꼭 깔자 → Decibel X 추천
  • 주변 소음 없는 시간대 추천 → 평일 오전
  • 스마트폰 대신 마음으로 녹음하세요
  • 한 지점에 오래 머물수록, 더 많은 소리가 들립니다

(그리고... 꼭 발 담그고 들으세요. 소리가 다르게 느껴집니다.)


쌍곡계곡은 소리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곳

사진보다, 풍경보다,
소리를 남기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합니다.

 

이 여행 이후로,
나는 매일 듣는 도시의 소리도 조금 달라졌다.


버스 브레이크 소리도,
커피 내리는 소리도,
그날의 계곡을 떠올리게 했다.

 

들으려는 귀가 생기면, 세상은 음악으로 가득 차니까.


🎧 한 줄 결론

눈이 아닌 ‘귀’로 기억에 남는 여행,
쌍곡계곡은 그런 곳이다.